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독일 연방 (문단 편집) == 사회 == [[1820년]]에 독일 연방의 인구는 24,900,000명으로 상당히 많았지만 이후에도 [[서유럽]]의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가 조금 더 빠르게 성장했다.[* 오스트리아 제국은 제외한 통계이다.] 이러한 인구 증가에는 각종 농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와 같은 영양실조 및 기근으로 인한 아사가 크게 줄었던 점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. 또한 각종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유아 사망률이 크게 낮아진 것이 한 몫 했다는 의견도 있다.[* 하층민 사이에서 유아 사망률은 높은 편이었다. 독일 연방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30년이 지나고 나서 나온 [[함부르크]] 시 통계를 보면 20~30%의 신생아가 1세를 못 넘기고 사망했다. 이 정도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.] 다만 중상층 계급에서는 [[출산율]]이 낮아지는 움직임도 동시에 관찰된다.[* 이 시기 [[산업화]]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면서 출생률과 사망률이 모두 낮아지며 인구 규모가 고착화되는 현상도 관찰된다.] 더불어 [[미국]]으로의 [[이민]]도 이 시기 증가해서 약 30년 동안에만 240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으로 추산된다. 이름 탓에 [[독일인]]들로만 이루어졌을 거 같지만 정말 엄청나게 복잡한 [[다민족국가]]였다. 물론 독일인들이 수적으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기는 했다. 우선 홀슈타인 지역에는 [[덴마크인]]이 전통적으로 살고 있었으며, [[룩셈부르크]]에는 [[프랑스어]]를 모어로 삼는 [[벨기에인]], 오스트리아에는 [[체코인]], [[이탈리아인]], [[슬로베니아인]]이, 프로이센에는 [[폴란드인]], [[카슈브인]], [[소르브인]]이 살고 있었다. 게다가 1839년 이후에는 ~~비록 게르만 사촌관계라지만~~ [[네덜란드]]도 연방에 포함됐으니..... 여러 왕실들과 더불어 [[동프로이센]] 지방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[[융커]](Junker)로 대표되는 귀족들이 상류층을 형성했다. 이 융커 계층은 토지 소유권을 바탕으로 지역사회를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, 법정과 군대 내의 고위직까지 차지하고 있었다. 여기에 면세 혜택과[* 1861년에야 관련법규가 생겨 귀족들도 세금을 내기 시작했다.] 금융지원, 경찰력 행사와 같은 여러 특권을 누린 융커 계층은 [[독일 제국]]의 등장 이후에도 그들의 사회적 위신을 지키는데 성공하며 공무원과 군인 사회를 지배한다. 심지어 군인사회에 대한 지배력은 [[제2차 세계 대전]]때까지도 이어졌다.[* 2차 대전 때 독일군 주요장성들의 출신성분을 보면 융커 출신이 아닌 사람을 찾는 게 더 빠르다. 예를 들면 사막의 여우라 불렸던 [[에르빈 롬멜]]이 있다.] 한편 [[슐레지엔]]과 [[루르]]지방을 중심으로 급속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하는 [[부르주아]] 중산계급도 등장한다.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[[프랑스 혁명|1789년]]의 프랑스 부르주아들과는 달리 자신들의 재산을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귀족들과 결탁한다. 물론 나중에 가면 실질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지긴 한다. 사회 최하층의 주류를 구성한 사람들은 ~~예상했듯이~~ [[소작]]농들이었다. 융커들의 토지에서 소작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은 융커들이 보낸 대리인~~[[마름]].......?~~의 감시와 함께 이 시기까지도 잔재한 봉건적인 의무들에 시달려야 했고, 여기다 [[나폴레옹 전쟁]] 이후 프로이센 당국이 [[징병제]]를 실시하면서 이제는 사병으로 병역의 의무까지 져야 하는 등 여러모로 불쌍한 존재였다. 또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노동자 계층도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[[독일 사회민주당]]으로 상징되는 [[마르크스주의]]와 노동운동은 아직 이 시기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